바틀비-월스트리트의 한 필경사 이야기
허멀멜빌 / 추선정 옮김 / 책봇에디스코
I would prefer not to.
상업적인 최고의 장소인 월스트리트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 바틀비는 지금은 아주 생소한 필경사(글씨를 쓰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출처 다음 사전)로
화자인 변호사 사무실에서 근무한다.
‘나’는 변호사로 어려서부터 인생을 쉽게 가는 것이 최고라는 확인을 가지고 살아 온 사람(p.5)으로
타인을 빌어 자신의 장점을 ‘신중함’과 ‘체계성’이라고 말하고 있다.(p.6)
바틀비에 대한 첫인상을 ‘파리하게 단정하고, 비참할 정도로 정중하고, 구제할 수 없을 만큼 고독한 그런 모습’이라고 한다. 또, 엄청난 양의 필사를 하는 바틀비에 대해 ‘낮에는 햇빛에 밤에는 촛불에 의지해 밤낮으로 일했다.
만일 그가 즐겁게 일했다면, 나는 그의 근면함을 기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조용하고, 피폐하게 그리고 기계적으로 써나갔다.’(p.20)라고 말한다.
바틀비는 이상하게도 나의 적의를 가라앉힐 뿐만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며 당황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p.24)
그의 끈기, 낭비를 모르는 점, 지속적인 근면성, 고요함, 그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태도를 보면 그는 정말 소중한 직원이었다…….. 나는 그의 정직함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문서가 그의 손에 있으면 완벽하게 안전하다고 느꼈다.(p.32),
그의 품위있는 유순함은 나를 무장해제 시켰을 뿐만 아니라 나의 남성성도 빼앗았다. 자신이 고용한 직원에게 지시를 받고, 심지어 자신의 사무실에서 나가라는 명령을 받은 사람은 이미 자신의 남성성을 잃은 것이다.(p.34)
바틀비가 이곳(사무실)을 집으로 삼고 독신 생활을 한 것이 틀림없다고 행각했다. 그리고 비참한 외로움이 여기에 드러난다는 생각이 번뜩 스쳐갔다. 그의 가난도 끔찍했지만 그의 고독은 얼마나 더 몸서리쳐지는지!(p.36)
처음엔 바틀비의 행동을 위선적인 관용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바틀비가 사무실에서 생활하는 것을 알게 되 순간부터는 ‘인간이라는 유대감’, ‘형제의 비애’로 생각하며 저항할 수 없는 슬픔을 느끼게 되었다.(p.37)
바틀비가 필경까지 그만두겠다고 하고도 여전히 사무실에 붙박이로 남아 있자 ‘그는 나에게 목에 걸린 맷돌처럼, 피할 수 없는 책임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불쌍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말은 내 진실에 미치지 못하는 표현이다,’(p.46)에서 알 수 있듯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커져갔다. 그에게도 바틀비의 태도는 분노하기에 충분했지만 자비롭게 이해함으로써 바틀비를 향해 끓어오르는 화를 가라 앉히려고 노력했다.(p.54)
하지만 사무실에 바들비에 대한 방문한 친구들의 주제 넘는 무자비한 말은
결국 ‘관대한 사람의 최선의 결심’마저 흔들리게 만들어,
바틀비가 사무실을 나갈 수 밖에 없을 것이라 여겨 사무실을 옮길 것을 결정한다.
그에게 얼마간의 돈을 쥐어줬다. 그러나 그것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상한 말이지만 나는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그에게서 나 자신을 찢어냈다.(p.60)
사무실을 옮기 후에도 바틀비는 계속 사무실에 남아 있어,
결국 열정적이고 단호한 건물 주인이 경찰을 불러
바틀비를 부랑자로 구치소에 수감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지만
결국 바틀비는 스스로 굶어서 죽는 것은 선택했다.
삽화를 포함해서 약 70여 쪽의 짧은 소설이다.
세 번을 읽었지만 역시 내가 찾는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바틀비가 필경사가 되긴 전
배달불능 우편물과에서 일하다 해고되었다는친절한 설명은
바틀비가 죽을 선택한 이유가 바로 부랑자로 구치소에 수감된 순간
자신이 마치 배달 불능 우편물로 분류됐다는 생각에
스스로 소각해 버린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월스트리트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의 중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바틀비가 행한 소극적 저항은 어떤 의미가 가지고 있을까?
만약 내가 변호사라면? 바틀비라면?
만약 바틀비가 변호사의 여럿 제안 중 하나를 선택했더라면?
짧은 내용이지만 생각이 복잡해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어릴 때부터 배워왔다.
관계를 맺고 문화를 형성하고 그 문화를 따르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하지만 주변에서 사회로부터 소외된 이웃을 종종 발견한다.
특히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가난은 끔찍한 재앙이며,
극복할 수 없는 한계를 느끼고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들이 바로 우리 주변의 바틀비이다.
그들이 이 사회에 아직 구성원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의 역할임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취미생활]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3-#2)영화, 철학을 캐스팅하다 (0) | 2024.06.12 |
---|---|
(2024-#5)친구 (0) | 2024.06.10 |
(2024-#3)쇼펜하우어 아포리즘 (0) | 2024.06.10 |
(2024-#2)여름의 끝 (0) | 2024.06.10 |
(2024-#1) 은밀한 결정 (0) | 2024.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