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시그리드 누네즈 / 공경희 옮김 / 열린책들
“사랑과 예술 그리고 우정에 대한 친밀한 고백”
<나>는 글쓰기를 소명으로 여기는 소설가이자 문예 창작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유명 작가이자 한때 스승이자 애인이었던 <그>의 자살은 나를 깊은 상실감으로 몰아넣었다. 추도식이 끝나도 며칠 뒤 그의 세 번째 부인으로부터 개인적인 만남을 요청받는다. 남편이 사랑하던 대형견 아폴로를 맡아 달라는 말이었다. – 책 표지-
<나>는 <그>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말하면서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고 울다가 실명한 캄보디아 여성의 슬픔에 비교할 만큼 깊은 상실감에 빠졌다.
“물론 개들이 사람을 얼마나 따르는지 알고 있었어요. 개가 헌신의 아이콘인 걸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하지만 헌신의 본능이 너무 강해서, 자격 없는 인간에게도 퍼주는 게 못마땅해서 난 고양이를 선호해요.
나 없이 잘 지낼 수 있는 반려동물이 좋거든요” (p 55)
이 부분에서 <나>의 성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이미 <나>는 <그>의 세 번의 결혼과 방탕한 연애 생활로
어쩌면 더욱 일찍 <그>로부터 상실감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라는 관계로 <그>의 주변에 있는 <나>의 존재가
자격 없는 인간에게도 퍼주는 개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가 떠난 후 애도에 치진 아폴로와 같이 지내게 된다.
“난 아폴로가 누구에게 짖거나 으르렁대야 된다고 느끼는 게 싫어요. 아폴로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요. 어디 가든 아폴로가 우리가 아주 안전하다고 느끼면 좋겠어요. 난 아폴로가 내 총이 되길 바라지 않아요. 아폴로가 얌전하게 따라오면 좋겠어요. 행복한 개가 되면 좋겠어요…… 아폴로가 또 울어요. 아폴로는 당신을 잊어야 해요. 당신을 잊고 날 사랑해야 해요. 꼭 그렇게 되어야 해요.”(p.108)
“난 동물을 향한 동정심의 정도는 그것이 일으키는 자기 연민의 정도와 상관 있다고 믿어요”
(p 112)
<나>의 슬픔만큼 아폴로의 슬픔이 크게 느껴지는 <나>는
아폴로도 <그>를 잊어야 된다고 하는 말로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책을 펼쳐 소리 내서 읽기 시작하는 <나>에게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쳐다보며,
목소리의 변화에 맞춰 귀의 위치가 달라지는 등 아폴로는 위로 받는 듯 보였고,
<나> 역시 그런 모습에서 위로를 얻는다.
<그>에게 이야기 하듯 서술되던 글이
PART 12에서는 아폴로에게 말하듯 서술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아폴로와의 이별이 두렵다고 말한다.
“언젠가 둘이 멀쩡하게 나갔다가 네가 돌아오지 못하는 날이 올까 봐 난 두려워.”(p 235)
“어제 네가 아침 식사를 건드리지 않자 난 그 순간이 온 줄 알았어. 내가 먹을 빵을 잘라서 내밀자 너는 받아먹었어(같이 미사를 보는 것 같았지.” (p 237)
“이 글을 쓰는 게 허튼 짓인지 당연히 우려했지. 뭔가 쓰려는 건 그걸 붙들고 싶기 때문이거든….망각에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지만 늘 반대 현상이 생길 위험이 있지. 경험 자체의 기억을 경험을 쓴 기억에 뺏기는 거야……….. 그러니 이런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어. 잃은 사람에 대해 글을 써서-혹은 그에 대해 말을 너무 많이 해서- 그를 영원히 묻는 걸지도.”(p 243)
이렇게 <나>는 <그>를 놓기 시작한다.
“사실 그를 사랑했는지 아닌지 지금도 명확히 말할 수 없어. 전에 여러 번 사랑에 빠졌고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그런데 이 사람은…. 아, 이제 와서 그게 뭐 중요할까. 누가 알 수 있을까. 사랑이 무언지?........ 하지만 변한 게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야. 치유, 회복, 마무리 같은 표현들을 쓰려는 게 아니야. 난 뭔가 다른 걸 의식해. 준비 비슷한 느낌의 뭔가를. 아직 흔적은 없지만 뭔가 생기기 시작한 느낌. 놓아버리기.” (p 243)
그리고…. 꼼짝도 하지 않는 아폴로!
“네 이름을 부르고 싶지만 목구멍에서 소리가 잦아 들어. 아, 내 친구, 나의 친구!” (p. 245)
최근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액수인
1조3800억원의 재산 분할과 20억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한 이혼소송이 세간의 화제가 되었는데,
부정 행위에 대한 반성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일부일처제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 판결이라고 전해졌다.
<나>, <그>, <그의 3명의 부인> 그리고 그 외의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와 대비되었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의 느꼈던 이질감이 진부하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제목의 ‘친구’가 <그>라고 생각했다.
<그>를 추억하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아폴로를 통해 위로 받으며 그 슬픔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아, 내 친구, 나의 친구!”라고 아폴로를 애도하는 마무리는 처음에는 예상하지 못한 결말이었다.
“소설의 앞부분에서 느낀 감정과 이해한 내용이 끝까지 읽은 후에 사뭇 달라지기도 한다.”(p 247-옮긴이의 말)처럼.
<나>와 <그>를 이어주는 존재였던 아폴로가
어쩌면 <나>에게 <그>의 존재에서 벗어날 수 힘을 주었다고 하면 나의 지나친 생각일까?
<그>에 이어 아폴로를 놓아줌으로써 비로소 <나>는 <그>로 부터 완전히 독립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라서 좋았다.
비록 알지 못하는 문학인들의 작품과 글귀가 다소 산만하게 인용되어 집중을 흐리게 했지만
큰 상실감을 설명하느라 <나>와 <그> 사이의 진부한 추억담으로 채워지는 것 보다는 오히려 더 좋았다.
그리고 그 사랑의 크기를 애써 강조하려고 하지 않은 <나>의 모습도 좋았다.
<나>와 아폴로의 생활이 가까운 나의 친구와 그 반려견 ‘제니’의 삶과 오버랩되어
내 마음 한 켠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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