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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창고]/등산자료

[펌-국제신문]가족과 지리산 종주

by 해운대등대지기 2011. 9. 2.

 

출처 : 국제신문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610&key=20110812.22026191051

가족과 지리산 종주
맛있는 지리산, 가족과 함께 즐기다

 

 

 

   


- 구불구불 33㎞ 산행… '가족의 힘'으로 올랐다
-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경배하듯 한 걸음 한 걸음 하루 20㎞ 걷고 걸었지만
- 지친 기색 없던 두 아이

- 노고단에서 맞은 일출, 임걸령에서의 샘물 건배… 이런 체험이 또 있으랴
- 출발 보름 전 대피소 예약, 땀 나는 경쟁도 추억이라

   
성삼재에서 노고단 대피소로 올라가는 길. 고도가 높아질수록 구름도 짙어진다.

지리산이라면 산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른 설명이 필요 없겠지요. 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테지요. 우리나라 남북을 잇는 등뼈인 백두대간의 시작이자 끝이며 행정구역상으로 경남·전남·전북의 3개 도와 남원시, 산청군, 함양군, 하동군, 구례군의 5개 시·군에 걸쳐 있어 가장 큰 골격을 이루는 산이기도 합니다. 최고봉인 천왕봉에서 서쪽의 노고단까지 동서로 장장 25.5㎞에 걸쳐 우리나라 최고(最高), 최장(最長)의 산마루길이 펼쳐져 있습니다.

지리산은 한두 번 올라 본다고 눈 안에 모두 넣을 수 없을 만큼 넓습니다. 해발 1915m 천왕봉에 한 번 올랐다고 지리산을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런 수직적인 오름으로 넓고도 긴 지리산 품을 어찌 가늠이나 하겠습니까. 주능선 종주를 해봐야 어설프게라도 지리산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주능선 종주를 하면 갈래 쳐나가는 능선들과 숱한 계곡들을 두루 조망해보고 가슴 속에 담을 수 있습니다.

지리산 주능선만 놓고 보면 25.5㎞이지만 주능선에 오르고 내려가는 거리까지 더하면 아무리 짧게 잡아도 30㎞는 너끈히 넘고 화엄사에서 올라 대원사로 내려가는 길은 50㎞에 육박합니다. 게다가 해발 1507m인 노고단에서 1915m 천왕봉에 이르기까지 해발 1400m 안팎의 능선길을 오르내리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지요. 주능선 종주가 만만찮은 일이기는 하지만 기초 체력이 있고 준비만 탄탄히 한다면 큰 어려움 없이 다녀올 수 있습니다. 적당한 간격으로 대피소와 식수가 있는데다 이정표도 촘촘히 잘 설치돼 있습니다.

   
촛대봉을 지나 장터목 대피소로 가는 길. 천왕봉은 뒤쪽 구름에 가려 있다.

무릇 모든 산이 그렇듯 지리산 종주는 사계절 다른 변화무쌍한 조망과 경관을 보여줘 매번 새로운 감동을 안겨줍니다. 철쭉으로 유명한 봄철엔 입산통제로 발길을 허락하지 않지만 가을이면 화려한 단풍을 볼 수 있고 겨울엔 순백의 능선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여름이 한창인 지금은 운 좋으면 비 온 뒤 꿈결같이 부드러운 운해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어 산행의 참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름 가족과 함께 지리산 산행의 꽃이라 부르는 주능선 종주를 다녀왔습니다. '기초 체력이 있고 준비만 탄탄히 한다면' 괜찮았겠지만 체력이 예전만 못해 마음만 단단히 먹고 2박3일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나마 저보다 더 잘 걷는 초등생과 중학생 두 아이-어디까지나 자발적으로 산행에 나섰습니다-를 보며 위안을 삼았습니다. '내 이 짓 다시는 하나 봐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벌써 잊힌 듯합니다. 지리산의 매력이랄까, 마력(魔力) 때문이겠지요. 사실 지리산에 대한 글은 한둘이 아닙니다. 책과 같은 인쇄물뿐 아니라 블로그로 영역을 넓히면 일일이 셀 수 없을 지경입니다. 이런 책이나 블로그 포스팅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은 자신의 산행에 대한 자랑이 아니라 지금 생활하고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그만큼 강렬하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이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 가지는 못하더라도 지리산을 꿈꾸는 것까지 그만둘 필요는 없지요. 지리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니까요.


지리산 종주의 기점은 천왕봉이나 노고단 어디를 잡아도 크게 상관없지만 이번 가족 산행에서는 노고단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최고봉인 천왕봉을 먼저 오른 뒤 산행을 계속하는 것보다는 노고단에서 출발해 천왕봉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경배하듯 다가가는 것이 산행의 묘미를 더하는데다 결정적으로 바로 천왕봉으로 치고 올라가기에는 체력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성삼재까지 버스나 택시 등으로 이동해 노고단부터 산행을 시작하는 게 요즘 보편적이다. 우리 가족도 성삼재까지 버스로 이동해 노고단과 세석 대피소에서 잠을 자고 셋째 날 천왕봉을 오른 뒤 중산리로 하산했다.

■대피소 예약은 클릭 전쟁

   

산행은 지난 3~5일 다녀왔지만 실질적인 산행은 그보다 보름 전에 시작됐다. 바로 대피소 예약이다. 여름 휴가철이나 가을 단풍철에 지리산이나 설악산 같은 국립공원 대피소를 예약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얼마나 빨리 예약이 마감되는지.

대피소는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에서 해당 날짜의 보름 전 오전 10시부터 선착순으로 예약할 수 있다. 사실 노고단은 그렇게 인기 있는 대피소는 아니기에 예약도 여유로웠다. 노고단이 시범경기라면 세석 대피소 예약은 본경기였다. 7월 20일오전 9시 50분이 넘어 홈페이지에 로그인한 뒤 예약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56분, 57분,…. 10시가 가까워지면서 결전의 순간을 앞둔 것처럼 마우스를 쥔 손에서는 땀이 나고 심장이 두근댄다.

다시보기를 수차례 되풀이한 끝에 마침내 대피소 예약 화면의 날짜가 바뀌는 순간 가족 수만큼 4명의 세석 대피소 예약 버튼을 눌렀다. 이때 이미 예약인원 난에는 32란 숫자가 찍혀 있었다. '별일도 아닌걸' 두고 해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잠시 후 날아온 예약 확인 메일에 찍힌 시간은 10:00:17이었다.

■1100m 성삼재의 커피 체인점

   

첫날의 목표는 노고단 대피소. 다음 대피소인 연하천까지 가기는 첫날 일정이 빠듯할 듯해 둘째 날 긴 거리를 이동하기로 하고 노고단에서 하루를 묵었다. 부산을 출발해 구례터미널에서 성삼재로 오르는 버스로 갈아탔다. 버스가 구절양장 같은 오르막을 힘겹게 올라 1시간 만에 성삼재 주차장에 닿은 순간 "어, 저게 뭐야"라는 말이 우리 가족의 입에서 절로 나왔다. 탐방안내소 바로 앞에 커피 전문 프랜차이즈 매장이 떡 하니 서 있다. 메뉴나 가격은 산 아래나 마찬가지다. 아무렴 멋진 조망을 즐길 수 있는 곳을 차로 올라가니 휴가철 얼마나 많은 이가 찾을까. 주차장과 휴게소에는 반바지에 샌들 차림으로 넘쳐난다.

탐방안내소에서부터 2.5㎞ 남짓한 도로를 따라 산책하듯 노고단 대피소로 올랐다. 대피소에서 바라보니 지리 10경의 하나인 노고 운해가 펼쳐진다. 노고단은 남쪽 섬진강에서 습한 기운이 올라와서인지 지리산의 다른 곳보다 구름바다에 잠길 때가 잦다. 노고단은 접근이 쉬워 많은 탐방객이 찾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노고단 대피소의 풍경은 대피소라기보다는 펜션에 가까웠다. 산행을 위해서가 아니라 산정 가까운 시원한 대피소의 조금 독특한 잠자리에 자는 경험을 해보려는 사람들이 적잖다. 유원지에 온 것처럼 웃통을 벗고 뛰어노는 아이들과 나들이 복장 차림의 남녀. 심지어는 유모차를 끌고 온 부부도 있다.

대피소에서는 밤 9시면 어김없이 불을 끈다. 다음날 새벽 일찍 산행에 나설 사람들에 대한 배려다. 여름 성수기의 대피소 이용료 8000원으로 대략 가로 50㎝, 세로 2m의 공간이 내 것이 된다. 옆자리에 누가 눕는가에 따라 편안함의 정도는 다르다. 운이 없었는지 옆자리의 50대는 밤새 옆으로 바짝 다가와 코를 골았다.

■하루에 20.4㎞ 고난의 길

   
노고단 고개에서 돼지평전으로 가는 숲길에 아침 햇살이 스며들고 있다.

둘째 날 노고단 대피소에서 세석 대피소까지 하루 동안 걸어야 할 거리는 20.4㎞. 만만찮은 거리다. 만만찮은 정도가 아니라 모처럼의 산행에 나선 우리 가족에겐 무리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먼 거리를 생각해 서두른다고 서둘렀지만 오전 5시38분에야 대피소를 떠났다. 노고단고개에 도착하는 순간 정면의 반야봉 오른쪽으로 해가 눈부시게 떠오른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은 진작에 포기했기에 노고단 일출만으로도 감지덕지다.

숲 속으로 비치는 아침 햇살을 만끽하며 큰 굴곡 없이 부드러운 참나무 길을 1시간30분 정도 느긋하게 걷다 보니 피아골 갈림길을 지나 임걸령 샘이다. 아이들에게 임걸령(林傑嶺)이란 지명이 조선 선조 때 지리산 일대에서 활동했던 초적 두목 임걸년과 관련 있다는 설명을 해 주며 아는 체를 하고 싶었지만 '임걸령 샘물이 지리산에서 제일 맛있다더라'는 말만 하고 말았다. 이어 노루목으로 오르는 길은 이번 산행에서 처음 만난 제대로 된 오르막. 간밤에 잠을 설쳐 피곤하긴 하지만 팔팔한 체력으로 네 명 모두 가뿐하게 삼도봉까지 내처 올라갔다. 영동·무주·김천의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도가 만나는 삼도봉과 함께 유이(有二)하게 3개 도가 만나는 곳이다.

연하천 대피소를 거쳐 오후 3시가 넘어서야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했다. 몸은 천근만근, 무릎은 시큰시큰. '안전을 위해 세석 대피소행 통제, 하절기 오후 3시30분'이란 표지판이 보인다. 3시30분을 2분 넘겨 출발해 이날의 목적지인 세석 대피소로 가는 길은 힘에 겨워 '무념무상'의 경지에 오른 행로였다. 오전엔 쉴새 없이 눈을 사로잡던 원추리, 산꼬리풀 같은 야생화도 더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미 산행을 시작한 지 12시간이 넘었지만 그래도 두 아이는 생생하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목적지에 가까워지는 거야' 애써 위안하며, 그런 와중에도 틈틈이 걸음을 멈추고 배낭에서 묵직한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미국 작가 수잔 손택은 '가혹한 노동윤리에 시달리는 사람일수록 휴가지에서 사진 찍는데 집착하며 이는 일을 하지 않을 때 느끼는 불안감을 달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기자의 경우엔 지리산 산행이 휴가가 아니라 아예 일의 연장이 된 탓에 사진을 찍는데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남은 힘을 짜내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한 세석 대피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7시26분. 13시간48분이 걸린 긴 산행이었다.

■구름 속, 조망의 즐거움은 저 멀리

   
마침내 천왕봉. 기념사진을 찍기위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찰~칵.

드디어 마지막 날. 전날보다는 여유 있게 하루를 시작했다. 세석 대피소를 떠나 아침 햇빛 찬란한 촛대봉 지나 장터목 대피소에 닿았다. 산청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서늘한 취사장 옆 테라스에 올랐다. 한신계곡과 한신지계곡 방향으로 눈 아래 구름이 점점이 떠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테라스의 탁자에 앉은 사람들, 그 너머의 구름.

"야, 뒤로 보이는 풍경이 알프스의 카페 같지 않냐?" "흥, 가보기나 했어야지." 매몰찬 대답이 돌아온다. 그래도 사진으로 봤던 풍광과 좀 닮긴 했다. 조금의 차이라면 배경에 눈 덮인 마터호른 대신 푸른 산이고 커피 대신 라면 국물을 마시는 정도랄까.

제석봉을 오르면서부터는 구름 속이다. 노고단 대피소에서부터 31㎞를 걸어온 끝에 다다른 천왕봉에서는 강한 바람과 짙은 구름이 우리를 맞는다. 일망무제 천왕봉에서 펼쳐지는 조망은커녕 10m 앞을 보기 어려울 정도다. 그럼에도 휴가철의 천왕봉은 발 딛기 어려울 정도로 붐빈다. 중산리 방향 내리막에 끊임없이 나타나는 계단은 악몽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와중에도 법천계곡 갈림길에서는 탁족의 여유를 즐겼다. 오후 4시가 넘어서야 기나긴 산행의 종착지인 중산리 야영장과 포장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힘겨운 산행 끝에 아쉬움이 남는다. 다시 지리산 종주를 하게 될까. 혼잣말 같은 넋두리를 들은 아들이 한마디 한다. "앞으로 한 번은 더 올 기회가 있지 않을까요. 난 뭐, 여러 번 더 올 것 같지만."

가족이 함께하는 지리산 종주는 거창하게 호연지기나 가족의 유대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강렬한 추억으로 남는다. 여름 휴가철이 아니더라도 계절에 따라 적당한 시기에, 꼭 종주하지 않더라도 산에서의 하룻밤은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다. 다만 잠자리의 불편함과 집과는 다른 화장실을 감내할 각오만 한다면.


● 종주 Tip

보통 지리산 종주라 하면 전남 구례 화엄사를 출발해 노고단과 천왕봉을 거쳐 경남 산청 대원사로 내려오는, 아니면 반대로 걷는 걸 말하지만 요즘은 방향에 상관없이 천왕봉~노고단을 주파하는 걸 종주로 간주한다. 등정과 하산은 코스에 따라 다르지만 화엄사와 중산리를 많이 이용한다. 때로는 노고단에서 만복대와 정령치로 이어지는 서북능선까지 확대해 종주 산행에 나서기도 한다. 근래에는 구례에서 성삼재까지 차량으로 이동해 종주를 시작하는 사람도 많다. 출발할 때 체력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성삼재로 오를 때 천은사를 지나가며 '문화재구역입장료'를 내야 한다.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면서부터 도로를 통과할 뿐인 등산객들의 반발이 거세지만 도로가 사찰 소유지를 관통하기 때문에 입장료를 징수한다는 천은사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 대피소 예약 Tip

지리산에는 서쪽에서부터 노고단, 피아골, 연하천, 벽소령, 세석, 장터목, 로타리, 치밭목 등 8개의 대피소가 있다. 화개재 아래에 있던 뱀사골 대피소는 뱀사골 계곡의 수원 보호를 위해 2007년 폐쇄됐다. 8개 대피소 가운데 대원사 코스의 치밭목과 주능선을 벗어난 피아골 대피소는 당일 선착순이며 나머지는 반드시 인터넷으로 사전예약해야 한다. 예약은 이용일 15일 전 오전 10시부터 할 수 있으며 일인당 4명까지 선착순이다. 주능선에 있는 대피소의 예약 인원은 연하천의 60명부터 세석의 190명까지 조금씩 다르다. 여름 휴가철이나 가을 단풍철에는 예약을 시작하고 30초 안팎에 마감된다. 체력적인 부담으로 예약한 대피소에 도착하지 못하는 사람과 예약하지 않고 오는 사람들도 홀과 복도 등에서 밤을 보낼 수 있다. 대피소에서는 담요를 대여하므로 침낭과 같은 짐의 무게를 줄일 수 있다.


● 교통편 Tip

노고단으로 가려면 일단 서부터미널에서 전남 구례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며 3시간이 소요된다. 구례에서는 군내버스를 이용해 화엄사로 가거나 성삼재로 가면 된다. 성삼재 가는 버스는 오전 11시40분, 오후 1시40분, 3시40분, 5시40분(막차) 등에 운행한다. 천왕봉으로 연결되는 중산리나 대원사로 가려면 서부터미널에서 바로 가는 버스를 이용하거나 진주에서 갈아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