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월 책모임 책
은밀한 결정 / 오가와 요코 /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알 수 없는 힘으로 인해 사물의 존재와 기억이 사라지는 섬.
주기적으로 ‘소멸’이 일어나면 섬 사람들은 그에 관한 모든 기억을 잃고 관련된 물품들을 모두 소각한다.
혹 그 중에 기억을 잃지 않은 사람들은 비밀 경찰에 끌려가 사라진다.
소설가인 주인공 “나”의 어머니도 기억을 잃지 않은 이유로
비밀 경찰에게 끌려가 얼마 되지 않아 사망 진단서와 함께 시신으로 돌아왔다.
“ 그저 사라지기만 하는 섬에서 이렇게 말로 뭔가를 만들어 내다니 신기하군.”(p33)
“ 만약 말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p34)
출판사 편집자 “R”씨가 어머니와 같은 기억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 “나”는
본인의 집에 은신처를 마련해주고
할아버지(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후 주인공을 돌보다 돌아가신 가정부의 남편)과 함께 그의 돌본다.
“만약에 인간이 소멸하면요?”
“아가씨는 여전히 복잡한 생각을 하시는 군요……...(중략)
인간은 소멸과 무관합니다. 가만히 있어도 언젠가는 반드시 죽으니까요…… “ (P249)
“나”와 “R”을 헌신적으로 돕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처음 찾아온 소멸은 ‘왼다리’였다.
“R”은 주인공 “나”의 소멸과 함께 사라진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왼다리에 이어 오른팔이 소멸된 후 주인공 “나”는 이미 소멸된 소설을 어렵게 어렵게 완성하다.
목소리가 사라진 타자수에 관한 내용이다.
“내가 사라진 후에도 이야기는 남을까요?”
“당연하지. 당신이 적은 말 하나하나가 기억으로 존재할 거야. 사라지지 않는 내 마음속에서……”(P362)
“당신은 드디어 여기서 나갈 수 있겠어요. 바깥세상에서 자유를 되찾는 거예요.
비밀경찰은 더 이상 기억 사냥을 하지 않아요. 목소리만 남았는데 어떻게 사람을 체포할 수 있겠어요?”(P365)
그리고 주인공 “나”도 결국 사라지고 만다.
책을 읽으며 권력에 순응하는 일본인들의 문화(?)-충분히 주관적일 수 있다. –가 다시 생각났다.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에 이은 쓰나미가 후쿠시마를 덮쳐 최악의 재난이 발생했을 때,
가족이 죽거나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데도 마치 슬픔을 밖으로 표현하면 안 된다는 듯
최대한 담담하게 인터뷰하는 사람들의 영상들.
그 난리 속에 오가는 차 한대 없는데도 신호등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찍힌 영상들.
혹자는 위대한 시민의식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모습들이었다.
이 소설에서도 기억을 잃지 않은 ‘R’과 같은 사람들을 제외한 섬사람들은 소멸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마치 해가 뜨고 지는 불변의 자연법칙을 따르듯.
문득 세월호 사고와 이태원 참사가 떠올랐다.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의 슬픈 절규가 짐승의 울부짖음으로 조롱받던 일.
주인공 “나” 처럼 사라져버린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
그리고 영정사진이 허락되지 않은, 희생자의 이름이 사라진 조문……
“지배층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차례대로 사라지는 이 섬에서 사라지지 않는 다는 것이 불상사고 부조리일 테니까. 그래서 직접 나서서 억지로 지우는 거야.” (P33)
소멸된 물건들을 소각하는 이 섬사람들을 상상하면서 슬픔조차 허락되지 않는 사회가 떠올랐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덮고 기억조차 소멸시킨다 해도, 남겨진 자가 해야 할 일은
“잊지 않고, 기억하자!”는 것이 이 소설이 남긴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책모임에서 이 독후를 올렸다가 사소한 분란이 일어났다.
여긴 PK.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이 독후를 쓴 이후에 떠오른 생각인데
소설 속에 등장하는 타자수가 타자 선생님(?)으로 상징되는 권력에 의해 목소리를 잃고
그에게 길들어져 가고 그 절대적 힘에 순응하는 결말은
'순응'은 '소멸'에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주인공 "나"가 소멸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어렵게 어렵게 완성해 내어야만 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기억'이 은밀한 결정이 아니라 주인공 '나'가 적은 이 소설이 은밀한 결정이 아닐까 싶기도하다.
기억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소멸'에 방점이 있고
'저항'을 잊은 일본사회에 대한 경고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결론지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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