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러비드
토니 모리슨 /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이 소설은 1856년 1월, 노예로 살다가 도망친 젊은 엄마 마거릿 가너가 주인의 농장으로 돌려보내느니 차라리 그 중 하나를 죽여버린(그리고 나머지 자식들도 죽이려고 한) 혐의로 체포되고, 도망노예를 소유주에게 송환하도록 한 도망 노예법에 맞서는 투쟁에서 유명한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야기의 핵심 인물은 그녀여야만 했다. 살인자가 아니라 살해당한 자,
모든 걸 다 잃고도 그에 대해 아무 발언권도 갖지 못했던 사람.
그녀는 바깥을 떠돌고 있을 수 없었다. 집에 들어 가야만 했다.
오두막이 아닌 진짜 집에. 정식 주소가 있는 집.
한때 노예였던 사람들이 사는 그들의 집에.
이 집으로 들어가는 로비는 없을 것이고, 따라서 이것 혹은 이 소설로 들어가는 ‘서문’도 있을 수 없다.
나는 다짜고짜 독자를 납치하여 낯선 공간에 사정없이 내던짐으로써
이 책의 인물들과 함께 경험을 나누는 첫걸음을 디디게 하고자 했다.
아직 등장인물들이 아무 준비나 대비도 없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아무데로나 끌려다녔던 것처럼 말이다.
(작가의 말 p453)
아닌게 아니라 이 책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무했던 나는 토니 모리슨의 의도대로 아무 준비없이 이끄는데로 끌려다니느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야기에 집중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오죽하면 ‘빌러버드’의 의미가 잘 알 수있는 부분을 읽고도 1부 끝에서야 알게 되었을까?
네 글자를 새기는 데 십분. 십분을 더 허락했더라면 ‘디얼리’란 글자도 새길 수 있었을까?
그때는 남자에게 물어볼 생각조차 못했지만 그럴 수도 있었으리라는 미련이 아직도 그녀의 마음을 괴롭혔다.
이십 분 아니 삼십 분이었다면 장례식에서 들은,
‘디얼리 빌러버드(참으로 사랑하는)’라고 한 목사의 말(사실 목사가 한 말을 그게 다였다.)을
전부 아기의 묘비에 새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중요한 한마디만을 새겨넣었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중략)…그 정도면 분명 충분했다.
또다른 목사나 또다른 노예제 폐지론자, 그리고 혐오로 가득한 마을 사람들에게도 대답이 될 만큼 (p 16)
목이 잘린 어린 아기의 원혼이 남겨졌다고 믿는 124번지가 소설의 배경이다.
세서와 그의 시어머니인 베이비 석스, 그녀의 딸 덴버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영혼과 함께 거기서 살고 있다. 세서가 그녀보다 먼저 탈출시켜 베이비 석스에게 도착했던 두 아들은 영혼이 무서워 집을 떠나고 없고, 함께 탈출하려던 남편 핼리는 소식도 모른 채 살고 있다. 베이비 석스는 아들 핼리가 주말에도 일을해서 번 돈으로 자유를 얻어 분주하고 즐거운 124번지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베이비 석스 성녀는 사랑하고, 타이르고, 음식을 먹이고, 질책하고, 위로했다. (P146)
베이비 석스가 신시내티로 가기로 결심한 까닭은
노예 생활이 그녀의 ‘다리와 등, 머리, 눈, 손, 신장, 자궁 그리고 혀까지 망가뜨려놓았기 때문에
먹고살 수 있는 수단이 심장말고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서였다.
그녀는 당장 심장이 하는 일에 착수했다.
어떤 명예로운 호칭도 이름 앞에 붙이길 거부하고
이름 뒤에 소박한 포옹만을 허락하며 교회 없는 목사가 되었다.
그녀는 신도를 직접 방문하고 자신의 넓은 심장을 활짝 열어 그들이 마음껏 쓸 수 있게 했다. (p 147)
’저 흰둥이들은 내가 가진 모든 걸, 내가 꿈궜던 모든 걸 빼앗아갔어.’ 베이비 석스는 말했다.
'그리고 내 심장마저 부숴놓았지. 세상에 불운 따위는 없어. 흰둥이들이 있을 뿐이지.’
124번지는 굳게 닫혔고 원혼의 독기를 견뎌야 했다. …(중략)…
베이비 석스 성녀는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고 믿었다.
상이든 실제든, 은총따위는 없었다…. 며느리가 그 집에 도착한 지 불과 이집팔일 만에
그녀의 믿음과 사랑, 그녀의 상상력과 위대하고 커다랗고 늙은 심장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p 150~151)
세서에게 스위트홈에서 함께 지냈던 폴디가 나타났다.
“세서에게 미래는 과거의 접근을 막아내는 것이었다.
그녀와 덴버가 살고 있다고 믿는 ‘더 나은 삶’이란 단순히 과거의 삶이 아닌 삶이었다.
폴 디가 바로 ‘과거의 삶’에서 튀어나와 그녀의 잠자리로 기어들어왔다는 것도 더 나아진 일이었다.
그와 함께하는 미래, 혹은 그가 없다 해도 미래라는 생각 자체가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놓기 시작했다.
덴버를 위해서라도, 세서가 해온 대로 여전히 그 애를 기다리고 있는 과거로부터
그 애를 지키는 일이야 말로 무엇보다 중요했다. (p77)
폴디가 나타나자 유령은 방해를 하다 폴디가 그것을 쫒아내 버렸다. 그 이후 세서는 폴디와 좀 더 나아진 삶을 살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서로 손을 잡지 않았지만 그림자들은 손을 잡고 있었다.
세서가 왼편을 힐끗 보니, 세 사람의 그림자가 나란히 손에 손을 잡고 땅 위를 미끄러져가고 있었다.
어쩌면 그가 옳은지도 몰라. (p84)
옷을 모두 차려입은 한 여자가 물 밖으로 걸어나왔다……(중략)
여자는 땅바닥에서 몸을 일으켜 숲속으로 들어가서 회양목의 대신전을 지나고 들판을 지난 다음,
진회색 집 마당까지 다다르는 데 다음날 오전 시간을 다 보냈다.
그리고 또다시 녹초가 되어
제일 처음 눈에 들어온 적당한 자리-124번지 계단에서 그리 멀지 않은 그루터기-에 주저앉았다.” (p88~89)
오후 늦게 끝난 서커스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세서, 덴버와 폴디는 빌러버드를 만나 함께 집으로 오게 된다. 폴디 보다는 평소 아기 유령이 더 좋았던 덴버는 빌러비드를 ‘자기의 것’으로 여기며 함께 지내게 된다. 세서와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희망을 품었던 폴디는 빌러버드로 부터 온갖 방해를 받아 결국 124번지를 떠난다. 그리고 세서가 탈출한 후 백인들이 124번지에 들이닥치자 자신의 딸을 살해했다는 오래된 신문 기사를 보게 된다.
한편 세서와 덴버 그리고 빌러버드는 셋이서 즐겁게 지내면서 세서는 빌러버드가 자신이 죽인 그 아이라는 것을 점점 강하게 느끼게 된다. 빌러버드 역시 세서에 대한 원망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빌러버드의 존재가 점점 더 커지면서 세서는 점점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갔다. 그리고 셋 모두는 점점 지쳐갔다. 덴버는 처음엔 세서로 부터 빌러버드를 보호해야 했지만 이젠 빌러버드로부터 엄마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세상에 나아가 누군가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나아간 덴버는 주위의 도움으로 위기에 처한 세서를 구하고 그 순간 빌러버드는 사라져버렸다.
주변으로부터 세서에 대한 소식을 들은 폴디는 덴버와 만나서 일하는 덴버를 위해 세서를 번갈아 돌봐주기로 했다.
차마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순간을 떠올리는 순간, 본능적으로 눈을 감게 된다.
그리고 모든 것을 망각할 수 있는 순간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다음 두 페이지에 세서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담겨있다.
덴버는 엄마와 빌러비드의 관계를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세서는 톱질에 대한 보상을 하려고 애썼고, 빌러버드는 그 보상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한도 끝도 없었고, 한없이 작아지는 엄마를 보면 덴버는 수치스럽고 화가 났다.
하지만 엄마가 가장 두려워 하는 일이, 바로 덴버가 제일 처음 두려워했던 그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빌러버드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자신이 빌러비드를 깨우쳐주기 전에 떠날까봐, 그
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 조그만 턱 아래 대고 톱날을 켜는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손안에서 아기의 피가 기름처럼 펑펑 솟구치는게,
머리가 떨어져나가지 않도록 얼굴을 붙잡고 있는 심정이,
생명의 힘으로 달콤하고 포동포동한 그 사랑스러운 아기의 몸을 관통하는 죽음의 경련을
어떻게든 흡수하려고 꼭 껴안은 심정이 어땠는지를 이해시키기 전에 빌러비드가 떠날까봐.
그러나 그보다도 베이비 석스가 죽음에 이른 이유와,
엘라가 아는 일과, 스탬프가 본 것과,
폴 디를 공포에 떨게 한 일은 훨씬, 훨씬 더 끔찍한 일이었다는 걸
그녀가 깨닫기도 전에 떠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피부가 희기만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하기 위해 흑인의 인격을 모두 빼앗을 수 있었다.
일을 시키거나 죽이거나 사지를 절단할 뿐 아니라, 더럽혔다.
완전히 더렵혀서 더는 자신을 좋아할 수 없게 했다.
그녀와 다른 이들은 그 일을 겪고도 살아 남았지만, 자식만큼을 절대 그런 일을 겪게 할 수 없었다.
자식들은 그녀와 보배였다.
백인들이 그녀 자신을 더렵혀도 괜챦았다.
하지만 그녀의 보배만큼은, 마법처럼 놀랍고 아름다운 보배만큼은,
그녀의 순결한 분신만큼은 그렇게 되게 할 수 없었다.
머리도 발도 없이 표시만 남은채 몸통만 나무에 매달린 시체들이 내 남편인지 폴 에이인지 고민하는,
그런 꿈으로조차 꿀 수 없는 꿈들은 더 이상 안 된다.
애국자들이 흑인학교에 불을 질러 부글부글 달구어진 여학생들 가운데 내 딸이 있는지,
백인 무리가 내 딸의 은밀한 곳을 침범하고 허벅지를 더럽힌 후 마치 밖으로 내던지지는 않았는지
괴로워하는 꿈들은 더 이상 꿀 수 없었다.
그녀 자신은 도살장 마당에서 몸을 팔지언정, 딸에게는 절대 안 될 일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딸의 특징을 공책의 동물적인 특징 목록에 적을 수는 없었다.
안 될 말이지, 오, 안 되고말고.
베이비 석스라면 걱정하면서 체념하고 살았을지 모른다.
지만 세서는 필사적으로 거부했었고, 지금도 거부했다.
덴버는, 엄마가 구석 자리에 앉아 하는 이런 이야기를, 그리고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는 어떻게든 믿게 해야 한다고 느끼는 단 한 사람, 빌러버드를 설득하려고 애를 썼다.
자기가 한 행동이 옳았다고,
진정한 사랑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고.(.p408~410)
해설에 의하면 “여러 비평가들이 ‘빌러비드’를 노예제에 희생된 ‘육천만 명 혹은 그 이상’의 흑인들에 대한 애도, 이승을 떠나지 못한 원혼들을 달래는 위령제에 비유한다.(p461)”고 한다. 나 역시 이 책을 덮는 마지막 순간 씻김굿과 해원의 순간이 떠올랐다.
누이집에서 새로 일할 여자애(덴버)를 태우려고 집안 소유의 124번지에 도착하려는 백인인 에드워드 보드윈을 자신의 마당에 침입한 백인으로, 또 빌러비드를 빼앗아 갈 것으로 오인하여 얼음송곳으로 공격하려는 순간 덴버를 포함한 이웃들이 세서를 제압한다. 그 순간 빌러버드는 사라지는데, 세서에 대한 원한이 오해였음을 인지한 까닭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폴디가 세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서, 세서는 비로소 해원을 하게 된다.
“세서, 그가 말한다.
“당신과 나, 우리에게 어느 누구보다 많은 어제가 있어. 이젠 무엇이 됐든 내일이 필요해.”
그는 몸을 숙여 그녀의 손을 잡는다.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당신이 당신의 보배야, 세서. 바로 당신이.” (p445)
자신의 자녀를 끔찍하게 살해한다는 것을 상상하기 조차 힘들지만 그녀의 그 심정이 또 전혀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아닌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오죽하면.
인간이 스스로 인간임을 상실하는 순간, 세상이 너무도 참혹하고 끔찍해 질 것은 자명하다.
어떤 특별한 부류가 우월하다는 착각에 빠지는 순간, 그 순간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백인 우월이 그랬고 제국 주의가 그랬고 독일의 나찌즘가 그랬다. 우리 역시 그 아픔을 가지고 있다.
https://youtu.be/DlJl3vjs-KI?si=uc1eClQAhTq-8bv-
“기억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는 법입니다. 그것과 정면으로 부딪쳐 돌파해 나가기 전까지는.”
(p464)
위의 토니모리슨이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말한 것과 같이 과거를 극복하는 방법은 그것을 잊으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이 그 아픔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소설은 1998년 영화로도 소개된 적이 있다. 오프라 윈프리가 세서역으로 연기했다고 한다.
복잡하고도 섬세한 세서를 그녀는 어떻게 해석했을지 궁금하다. 베이브 석스를 표현한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것들이 영화에서 어떻게 시각적인 효과로 표현되었을지도 궁금하다. 구할 수 있으면 한번 보고 꼭 한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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