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에서 시작한 쟈스민 혁명
이집트를 거쳐 42년의 철권 정치 카다피가 집권하고 있는
리비아에서도 카다피 반대 시위가 시작되었었다.
카다피는 외국 용병을 동원하고
자신의 지지기반을 총동원하여 바로 진압에 나셨고
나 역시 1980년 5월의 광주를 무색하게 하는
카다피의 무차별 폭력진압을 뉴스로 보면서
반카다피 시위대이게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냈었다.
정부관료조차 반카다피 세력에 가담하면서
리비아의 시민혁명은 성공을 거두는 듯 했으나
카다피 정부군의 맹공격에 밀려
그 성공여부조차 알 수 없는 장기전에 돌입하고
카다피는 시민혁명 세력의 거점인 뱅가지를 공격 피의 응징을 공언하기까지 했는데..
오늘 연합군이 리비아에 사태에 개입함으로써
카다피는 이제 그 생명을 다할것으로 예상된다.
수십년간의 독재를 통한 폭압정치에
동족에게 군사를 동원 무차별 사격, 폭격을 한 카다피를
전 세계가 합심하여 단죄하는 것은 마땅하지만
그 동안 수많은 리비아 국민들의 생명을 잃고 카다피와 힘들게 싸우는 동안에도
이런 저런 이유로 직접개입을 차일피일 미루던 연합군이
뱅가지 함락 위기까지 몰고간 직후에야 행동에 돌입했을까?
거기에 대한 아주 객관적 입장을 보여준 경향일보 사설을 소개한다.
경향신문 [사설]희생 최소화와 빠른 카다피 축출이 관건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3202116595&code=990101
해방 이후
우리를 일제의 폭압에서 벗어나게 해준 고마운 나라 미국
현재
카다피의 피의 응징에서 살려준 고마운 나라 미국과 연합군(?)
이렇게 오버랩되는 건 지나친 나의 예민함일까???
중동으로부터 안전한 석유자원을 확보해야 할 미국의 입장에서는
반카다피 세력이 성공할 경우 반미세력이 집권하게 되는 경우에 대해 우려했을 것이다.
그래서 혹
거의 죽기전에 살려줌으로써
리비아 국민이 미국에 절대적 호감을 갖게 만든 것은 아닐까???
그저 사설의 제목처럼
최소한의 희생으로 빠른 시기에 카다피가 축출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다행히 오늘 연합군의 개입으로 중동및 북아프리카의 반정부 시위가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고 한다.
지구상의 모든 민족과 국가들이
평등하고 자유로우며 또 평화롭기를 빌고 또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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